살 길이 도저히 보이지 않을 때, 그럼에도 손을 잡기로 합니다.

202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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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길이 도저히 보이지 않을 때, 그럼에도 손을 잡기로 합니다.


_ 이도균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그 해 봄은 유독 버거웠습니다. 활동가로 여러 운동에 참여한지도 어느덧 6년차에 접어드는데, 과중한 업무로 스스로를 돌볼 겨를도 없는 상황에서 찾아온 지인의 기일이 저를 참 힘들게 했습니다. 마음은 힘든데 그걸 드러내기가 참 어려웠어요.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동료 활동가들에게도, 열악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애쓰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꺼내보일 수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일들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던 중,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느끼는 괴로움을 알리면서 상담 프로그램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몇 번인가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상담사가 가진 편견이나 제가 속한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같은 것들이 문제가 되어 상담이 종결되기도 하고,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꺼내지 못하고 시간만 흐르다 종결된 상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20회 만나는 동안 선생님과 참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어요. 제가 지금껏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 당장 겪고 있는 여러 갈등이나 문제 상황에 대한 이야기, 제가 바라는 것, 저를 힘들게 하는 것들…


활동가로 사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새벽 서너 시에 자신의 위급한 상황, 혹은 괴로움을 토로하며 연락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쩌다 겨우 휴일이 생겨 혼자 쉬다가도 커뮤니티의 구성원으로부터 도움을 청하는 연락을 받으면, 한 달에 이삼 일 될까 싶은 휴일에도 타인의 감정을 돌보느라 스스로를 돌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애쓰면서도 누군가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올 때면, 그 때 다정하게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볼 걸, 만나자고 약속이라도 한 번 잡아볼 걸하는 마음에 괴로웠습니다. 부채감을 동력삼아 다시 또 제 자신을 소진시켰어요. 게다가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힐 때면 적은 활동비나마 지급받을 수 있는 상근직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무능력함을 탓해야 했습니다.


한 명의 소수자로서 저 또한 여러 폭력에 노출되었습니다. 옷차림을 빌미로 길거리에서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성폭력, 협박 등에 시달리기도 하고, 행사에 참여했다가 혐오세력의 집단적인 폭력을 겪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저와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납득하기 어려운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떻게든 다 견뎌냈다고 생각했지만 이따금 특정한 기억들이 떠오를 때면 견딜 수 없이 화가 나거나 우울해지기도 했습니다.


대학을 자퇴하고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 후로 사정은 도리어 나빠졌습니다. 활동에 시간과 돈을 사용할 수록 시간도 돈도 없는 상황에 놓였고, 위험하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다 문제가 발생해도 정작 저는 체계적인 도움을 구할 곳이 없었습니다. 겨우 용기내어 받게 된 제도적 지원이 기대했던 것과 무척 달라 실망한 후로는 어딘가에 도움을 청할 마음을 먹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건강은 계속해서 나빠지고, 어쩌다 응급실이라도 다녀오면 체력도, 돈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상황에서 다시 또 내일, 모레, 다음 주의 일정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해 봄 저는 담낭절제술을 받았습니다. 입원을 하면서 참여하기로 했던 행사에 참여할 수 없었고, 맡고 있었던 역할들을 맡을 수 없게 된 것에 대해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복잡한 심정으로 수술을 받고 깨어난 후,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 저 한 사람이 10년 정도 애쓴다고 무언가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제가 살아온 방식이 지속가능한 방식인지 스스로에게 되물었을 때, 점점 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 상태가 악화되고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지는데 나이는 먹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됐습니다. 이전부터 더 오랫동안 활동을 지속해 온 동료들은 어떻게든 방법이 생긴다고 말했지만, 저는 그 사람들만큼 유능하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사람이구나 하는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삶의 방식이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몇 달간 스스로를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활동가로 살아온 시간을 후회하거나, 향할 곳이 분명치 않은 분노에 휩싸여서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활로를 모색하고 추가적인 자원을 확보해서, 정말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받았던 20회의 상담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 이미 다 끝난 상황에서 감정들이 되살아나는게 두려웠지만, 20회의 상담은 전환점이 되었어요.


지난 몇 년 감정노동자로, 활동가로 살면서, 글을 쓰기도 하고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외부에 존재하는 구조적 문제나 관계의 문제에 늘 집중했습니다. 그건 이전까지 제 삶 에 존재했던 여러 어려움을 제 자신과 떨어뜨려놓고 고민하는 시간이었고, 그 결과 저는 스스 로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둘러싼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을 얻었다고 해서, 제가 겪었던 어려움이나 괴로움이 해소되지는 않았습니다. 저를 힘 들게 하는 문제들은 구조적으로 이해하였지만, 그 문제 속에서 살고 있는 스스로의 감정은 외면하고 의미없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의미있다고 생각한 것들로 제 자신을 채우고자 했습니다. 저는 두려웠던 거예요. 이미 다 끝난 상황과 사건들을 되새기고 그 순간 제가 느꼈던 감정들이 되살아나는 것이요.. 


그런데 상담을 받으면서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되었어요. 어린 시절 경험했던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느낀 불안감, 두려움, 또래 집단에서 섞여들어가지 못하고 학교폭력에 노출되면서 느꼈던 막막함, 우울감, 대학 진학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실패했던 관계. 인권 운동에 참여한 이후에도 삶이 미끄러질 때마다 느꼈던 분노와 억울함, 슬픔, 관계가 단절되거나 종료될 때마다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이 살아났어요. 그 순간 제가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저는 지금 이 순간의 제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느끼고 살아왔으며, 무엇을 바라는지 조금씩 알게되고, 제 삶에 존재했던 여러 어려움, 제가 겪었던 부당한 일들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다시 고민하면서 지난 몇 년 간 저를 붙 잡았던 세상에 대한 고민과 이해가 비로소 제 삶과 온전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의 욕망과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이제는 조금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요. 그리 고 앞으로 점점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인정이나 보 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든든함을 얻었습니다. 


* 세상에 대한 고민과 이해가 비로소 제 삶과 온전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늘 상대방의 목소리, 말투, 표정,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주목하며 상대의 감정을 살피던 행동을 조금씩 통제하면서, 오히려 관계가 개선되기도 했고, 저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거나 저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또 제가 가진 여러 장점과 잠재력에 대해 인지하면서 새로운 꿈이 생겼고, 해낼 수 있다는 믿음과 혹 해내지 못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제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제가 원하는 바를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는 방법을 익혀나가면서 스스로를 더 잘 돌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주변의 고마운 사람들을 더 잘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이미 제 안에 들어있었던 거라고 말씀해주셨지요. 이제는 그 말에 진심으로 동의할 수 있습니다. 제 삶을 돌보기를 회피하면서 오랜 시간 굳어졌던 감각들이 되살아난 것을 느낍니다. 이 감각들을 잘 유지하고, 새롭게 갖게된 꿈을 실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상담 때 말씀드렸던 제 꿈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따금 선생님과 함께 한 상담을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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